국내 성지 순례 후기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은 삼일 독립만세 99주기였다. 역사적인 날에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게 되어 설레고 기다려졌다. 사실 집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지만. 밤사이 비바람이 세차게 창문을 때리며 퍼붓더니 새벽 어스름 녘에 부슬부슬 그쳐갔다. 아침 일찍 예배당에 모여 이번 여행을 허락하신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도를 드린 후 교우 여러분의 환송을 받으며 성지순례의 길에 올랐다.
이번 국내 성지 순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부름 받은 21명의 피택 항존 직분자들의 훈련 과정이였다. 일꾼으로 세워지기 전에 우리 민족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돌아보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은 거룩한 부담이 되었다. 헐벗고 무지한 이 조선 땅에 인류의 소망인 예수복음을 전하며 낯선 땅에서 열정과 사랑으로 순교한 선교사들과 그들이 전한 복음으로 버려진 영혼들을 끌어안았던 선조들의 사랑과 희생을 배우는 시간들이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갈수록 나이 화창하게 개이기 시작했다. 김제 금산에 도착한 때는 따뜻한 봄 햇살이 일행을 반겨주었다. 조그마한 종탑이 있고 깨끗하고 낮은 돌담에 둘러쌓인 현대식 교회와 예전 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아담한 예배당이 있었다.
김제 금산 교회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기역자 모양의 한옥으로 마룻바닥에 남자와 여자가 따로 예배를 드렸던 풍경이 남아 있었다. 우리를 맞아 주신 목사님께서 설명을 시작하셨고 우린 그 예전처럼 남녀 구분하여 자리에 앉았다. 금산교회는 순교가 있었던 곳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신앙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미국의 젊은 선교사 테이트에게 복음을 받아들인 마방주인 조덕삼과 마부로 일하던이자익은 주인과 종의 관계였다.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시작한 교회가 성장하여 장로를 세워야 했는데 투표 결과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이 피택되었다. 유교사회이고 신분사회였던 그 당시에 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교회는 술렁였다. 그 때 조덕삼은 겸손히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종인 이자익을 섬기는 본이 되었다. 또 그를 평양 신학대학에 보내어 공부하게 하고 목사가 된 후 다시 금산 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하여 섬긴다. 유지였으며 연장자였던 마방주인은 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마부였던 이자익을 장로로 섬겼다.
예수님 생각이 났다. 겸손히 죽기까지 순종하여 이 땅 낮고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 제자들과 함께 가난하고 소외되고 연약하여 억압받던 자들을 섬기신 예수님. 삶으로 본이 되어준 금산교회가 지금의 교회와 사회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대접받기를 원하고 섬김을 받으려는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과 교회안의 보이지 않는 권력과 권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섬김의 도를 회복해야 할 때 이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를 짓고 나누며 베풀고 서로의 직분에 따라 순종하며 섬기던 아름다운 김제 금산교회. 이 땅에 우리가 지어야 할 교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국내 성지 순례 후기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은 삼일 독립만세 99주기였다. 역사적인 날에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게 되어 설레고 기다려졌다. 사실 집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지만. 밤사이 비바람이 세차게 창문을 때리며 퍼붓더니 새벽 어스름 녘에 부슬부슬 그쳐갔다. 아침 일찍 예배당에 모여 이번 여행을 허락하신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도를 드린 후 교우 여러분의 환송을 받으며 성지순례의 길에 올랐다.
이번 국내 성지 순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부름 받은 21명의 피택 항존 직분자들의 훈련 과정이였다. 일꾼으로 세워지기 전에 우리 민족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돌아보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은 거룩한 부담이 되었다. 헐벗고 무지한 이 조선 땅에 인류의 소망인 예수복음을 전하며 낯선 땅에서 열정과 사랑으로 순교한 선교사들과 그들이 전한 복음으로 버려진 영혼들을 끌어안았던 선조들의 사랑과 희생을 배우는 시간들이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갈수록 나이 화창하게 개이기 시작했다. 김제 금산에 도착한 때는 따뜻한 봄 햇살이 일행을 반겨주었다. 조그마한 종탑이 있고 깨끗하고 낮은 돌담에 둘러쌓인 현대식 교회와 예전 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아담한 예배당이 있었다.
김제 금산 교회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기역자 모양의 한옥으로 마룻바닥에 남자와 여자가 따로 예배를 드렸던 풍경이 남아 있었다. 우리를 맞아 주신 목사님께서 설명을 시작하셨고 우린 그 예전처럼 남녀 구분하여 자리에 앉았다. 금산교회는 순교가 있었던 곳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신앙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미국의 젊은 선교사 테이트에게 복음을 받아들인 마방주인 조덕삼과 마부로 일하던이자익은 주인과 종의 관계였다.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시작한 교회가 성장하여 장로를 세워야 했는데 투표 결과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이 피택되었다. 유교사회이고 신분사회였던 그 당시에 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교회는 술렁였다. 그 때 조덕삼은 겸손히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종인 이자익을 섬기는 본이 되었다. 또 그를 평양 신학대학에 보내어 공부하게 하고 목사가 된 후 다시 금산 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하여 섬긴다. 유지였으며 연장자였던 마방주인은 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마부였던 이자익을 장로로 섬겼다.
예수님 생각이 났다. 겸손히 죽기까지 순종하여 이 땅 낮고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 제자들과 함께 가난하고 소외되고 연약하여 억압받던 자들을 섬기신 예수님. 삶으로 본이 되어준 금산교회가 지금의 교회와 사회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대접받기를 원하고 섬김을 받으려는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과 교회안의 보이지 않는 권력과 권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섬김의 도를 회복해야 할 때 이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를 짓고 나누며 베풀고 서로의 직분에 따라 순종하며 섬기던 아름다운 김제 금산교회. 이 땅에 우리가 지어야 할 교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