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기독교 자유당 창당 중 순교하다 ” 생년월일 : 1915년 8월 6일 출생지 : 평남 순천읍 세변리 132번지 순교일 : 1948년 9월 22일 순교지 : 구금 중 순교 직분 : 목사 교단 : 장로교 |
이원일은 1915년 8월 6일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서면리에서 믿는 가정에서 출생했다. 숭실중학교를 거쳐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했으나 뜻한바 있어 중실전문학교를 중퇴하고 1938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9월 학기 들어 총회가 신사참배를 국민의 의례라 결의하는 바람에 큰 상처를 입었고, 평양신학교가 폐교하여 순천군 자산면에 소재한 식송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며 어려운 시절을 견뎠다. 그러다 평양신학교가 개교되어 1944년에 학교를 마치고 1946년에 목사안수 받았다.
기독교자유당이 교역자들 사이에 발기되었고 당시 이북교회를 주도하는 지도자 김화식, 김철훈, 김길수, 지형순, 이유택, 우상필목사 외에 장로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이원일목사는 기독교자유당 안주노회 선전부장으로서 집중적으로 참여하였다. 기독교자유당은 공산당에 항거하는 지도체제로 뭉쳐있어 언제라도 치열한 일전을 치를 각오가 돼 있었다. 이들의 정신적 후원자는 조만식장로였다.
기독교자유당 창당발기인 전원은 공산당이 실시한 11월 3일 주일 선거를 참여하지 않음으로 공산당국의 곱지 않는 눈총을 받고 있었다. 기독교자유당이 1947년 11월 19일 경당하기로 내정되자 악랄한 공산당은 그 전날인 1947년 11월 18일 평양신학교에서 회의하던 이목사 등 발기인 일동을 체포, 구금하였다.
젊은 이원일목사를 내무서원들은 너무도 가혹하게 다루었다. 나이든 목사들은 그래도 사정을 보고 다루었는데 반해 젊은 충을 때려잡으므로 일벌백계의 효과를 얻어 내려하였다. 기독교자유당 창당멤버들의 죄목은 ‘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과 내통하여 조국을 팔아먹을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다. 소위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취급을 했다.
이목사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너무도 의연하고 마음을 변개할 줄 모르자 담당 내무서원도 입을 벌리며 ”참으로 사나이 중에 사나이었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이목사는 전기고문에 몽둥이찜질, 물먹는 고문을 수없이 당해 끝내는 심장이 파열돼 합동찬송가 57장을 다 부르고 기도 후에 만 33세에 순교하였다.
이원일은 1915년 8월 6일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서면리에서 믿는 가정에서 출생했다. 숭실중학교를 거쳐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했으나 뜻한바 있어 중실전문학교를 중퇴하고 1938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9월 학기 들어 총회가 신사참배를 국민의 의례라 결의하는 바람에 큰 상처를 입었고, 평양신학교가 폐교하여 순천군 자산면에 소재한 식송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며 어려운 시절을 견뎠다. 그러다 평양신학교가 개교되어 1944년에 학교를 마치고 1946년에 목사안수 받았다.
기독교자유당이 교역자들 사이에 발기되었고 당시 이북교회를 주도하는 지도자 김화식, 김철훈, 김길수, 지형순, 이유택, 우상필목사 외에 장로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이원일목사는 기독교자유당 안주노회 선전부장으로서 집중적으로 참여하였다. 기독교자유당은 공산당에 항거하는 지도체제로 뭉쳐있어 언제라도 치열한 일전을 치를 각오가 돼 있었다. 이들의 정신적 후원자는 조만식장로였다.
기독교자유당 창당발기인 전원은 공산당이 실시한 11월 3일 주일 선거를 참여하지 않음으로 공산당국의 곱지 않는 눈총을 받고 있었다. 기독교자유당이 1947년 11월 19일 경당하기로 내정되자 악랄한 공산당은 그 전날인 1947년 11월 18일 평양신학교에서 회의하던 이목사 등 발기인 일동을 체포, 구금하였다.
젊은 이원일목사를 내무서원들은 너무도 가혹하게 다루었다. 나이든 목사들은 그래도 사정을 보고 다루었는데 반해 젊은 충을 때려잡으므로 일벌백계의 효과를 얻어 내려하였다. 기독교자유당 창당멤버들의 죄목은 ‘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과 내통하여 조국을 팔아먹을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다. 소위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취급을 했다.
이목사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너무도 의연하고 마음을 변개할 줄 모르자 담당 내무서원도 입을 벌리며 ”참으로 사나이 중에 사나이었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이목사는 전기고문에 몽둥이찜질, 물먹는 고문을 수없이 당해 끝내는 심장이 파열돼 합동찬송가 57장을 다 부르고 기도 후에 만 33세에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