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주교회를 지킨 과원지기 ” 생년월일 : 1899년 4월 21일 출생지 : 평안북도 정주군 서면 순교일 : 1947년 순교지 : 시베리아 납치 후 행방불명 직분 : 장로 교단 : 장로교 |
이경선은 1899년 4월 21일 평안북도 정주군 서면에서 부친 이명룡장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숭실중학교를 거쳐 숭실전문학교를 다니던 중 1919년 3.1만세운동 때 20세 나이로 평양시가지를 행진하여 쫓기는 몸이 되었다. 만주에 가서 매부 서훈장로댁에서 거주하며 금릉대학에 편입, 졸업하고 남경에서 사업을 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 일본인이 떠난 조선에서 정치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으나 해방과 동시에 김일성의 군대가 점령하여 꿈을 펼치지 못하였다. 공산당은 이경선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경선은 만주에서 공산비적들의 만행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찾아준 것은 고맙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종교인이라며 냉담한 반응으로 공산당의 회유를 거부하고 과수원농사에만 몰두했다.
1946년 봄 이경선은 섬기던 정주교회에서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이경선장로는 교회 아이들이 본인의 과수원에서 서리를 하여도 제재하지 않았고 저녁때가 되면 밥상까지 차려놓고 저녁을 먹여서 돌려보내곤 하였다. 하다못해 자기 신변동태를 지키는 일본순사에게도 꼬박꼬박 식사를 제공하고 명절 때면 선물을 주기까지 하였다.
이장로가 장로가 된 후 맞이한 3.1절기념행사가 공산주의 사고로는 사치한 것이라고 행사자체를 막자 공산당에 항거하였다. 당시 평양시내 청장년회회장이었던 이장로의 주도로 장대현교회에 1만 명이 모여 3월 1일 오전10시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제창하고 만세삼창을 불렀다. 공산당은 무장군인까지 동원했지만 손 하나 쓸 수 없게 되자 3.1기념행사 주동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와중에 1946년 11월 3일 주일선거도 거부하여 5도 연합노회가 항거 공산당이 계획했던 100%선거 참여목표에 훨씬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1947년 봄 월남을 권유하는 주변의 권유에도 시무하는 교회를 버릴 수 없음과 공산당에 대한 동족의 향수로 인해 피난가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이경선장로는 보안서원들에게 체포되어 신의주 소련사령부로 압송되었다가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그 후 소식이 끊겨 48세에 순교길에 올랐다.
이경선은 1899년 4월 21일 평안북도 정주군 서면에서 부친 이명룡장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숭실중학교를 거쳐 숭실전문학교를 다니던 중 1919년 3.1만세운동 때 20세 나이로 평양시가지를 행진하여 쫓기는 몸이 되었다. 만주에 가서 매부 서훈장로댁에서 거주하며 금릉대학에 편입, 졸업하고 남경에서 사업을 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 일본인이 떠난 조선에서 정치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으나 해방과 동시에 김일성의 군대가 점령하여 꿈을 펼치지 못하였다. 공산당은 이경선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경선은 만주에서 공산비적들의 만행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찾아준 것은 고맙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종교인이라며 냉담한 반응으로 공산당의 회유를 거부하고 과수원농사에만 몰두했다.
1946년 봄 이경선은 섬기던 정주교회에서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이경선장로는 교회 아이들이 본인의 과수원에서 서리를 하여도 제재하지 않았고 저녁때가 되면 밥상까지 차려놓고 저녁을 먹여서 돌려보내곤 하였다. 하다못해 자기 신변동태를 지키는 일본순사에게도 꼬박꼬박 식사를 제공하고 명절 때면 선물을 주기까지 하였다.
이장로가 장로가 된 후 맞이한 3.1절기념행사가 공산주의 사고로는 사치한 것이라고 행사자체를 막자 공산당에 항거하였다. 당시 평양시내 청장년회회장이었던 이장로의 주도로 장대현교회에 1만 명이 모여 3월 1일 오전10시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제창하고 만세삼창을 불렀다. 공산당은 무장군인까지 동원했지만 손 하나 쓸 수 없게 되자 3.1기념행사 주동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와중에 1946년 11월 3일 주일선거도 거부하여 5도 연합노회가 항거 공산당이 계획했던 100%선거 참여목표에 훨씬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1947년 봄 월남을 권유하는 주변의 권유에도 시무하는 교회를 버릴 수 없음과 공산당에 대한 동족의 향수로 인해 피난가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이경선장로는 보안서원들에게 체포되어 신의주 소련사령부로 압송되었다가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그 후 소식이 끊겨 48세에 순교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