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인 준 ( 金 仁 俊 , 1986 ~ 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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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나라에 등록된 신학교요 ”
생년월일 : 1886년 9월 16일(음7월 27일)
출생지 : 평안북도 철산군 참면
순교일 : 1947년 1월 17일
순교지 : 시베리아로 유배
직분 : 목사
교단 : 장로교


김인준은 1886년 9월 16일(음7월 27) 평안북도 철산군 참면에서 부농은 아니었으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4남매 중 막내로 출생했으나 출생 2주되던 날 부친의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서 서당에서 공부했다. 16세에 논어, 맹자, 4서 3경 등 한학은 있는 대로 다 마치니 훈장께서 평양에 가 신학문을 공부하길 권하자 서양인집에서 일을 하며 대성학교와 숭실중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숭실에서 1개월 만에 월반하여 3개월 만에 진급하여 5년 과정을 3년에 마치고 본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김인준목사는 숭실전문을 졸업하고 1926년 평양신학교를 19회로 졸업하고 1929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최초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시카고 대학, 프린스턴, 리치몬드 유니온신학교를 수행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33년 6월 교수요원으로 귀국했다. 그 후 신학교육은 물론 저술, 번역작업 등 3중고에 시달리면서도 평양부 외상흥리에 소재한 상흥교회를 맡아 해방이 되기까지 교역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김진수목사를 도와 이북5도연합회를 조직하고 총회 없는 이북지역의 총회로 신학교를 개설하여 운영했고 이북5도연합노회는 만장일치로 김인준목사를 학교장으로 승인했다. 

강양욱목사는 교회의 단결을 저지시키기 위해서 기독교도연맹을 출범시키고 강권적으로 교역자들의 가입을 권유했다. 강양욱은 신학교에까지 침투해 공산주의에 협력할 것을 회유했지만 김인준목사는 거부했고 자신만 거부한 것이 아니라 교직원이 그들의 강압에 의하여 가입하면 가차 없이 쫓아버렸다. 

교장 김인준목사가 북조선 인민위원회 교육성에 등록하기를 거절하자 공산당은 학교 교장실 복도에 내무성의 경찰을 상주시켰다. 김목사는 1946년 겨울옷 솜바지 저고리에 솜버선까지 신고 출근을 했다. 끌어가면 미련 없이 끌려가겠다는 자세였다. 

1946년 11월 19일 공산군은 김목사를 1차 검속했다가 일단 돌려보낸 후 이듬해인 1947년 1월 17일 소련군 사령부 특무대 요원들을 보내 김목사를 연행하면서 그와 함께 이북5도연합노회 목사 전원이 연행되어 함께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