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 순교자” 생년월일 : 출생지 : 순교일 : 1921년 순교지 : 평안북도 자성 직분 : 목사 교단 : 침례교 |
출생지와 출생연대를 확인할 수 없는 손상열은 본래 교사로서 수고하다가 1920년 영일군 광천교회에서 열린 제 15회 대화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는 당시 침례교 내에서 남다른 열정의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돌봄과 섬김이 특별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안수를 받은 그는 첫임지로 가장 추운 지방 중의 하나인 평북자성군으로 갔다.
사람이 살기에 매우 열악한 지역이지만 건너다 보이는 만주땅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쓰러져 가는 동포들을 생각하면 이곳의 추위와 어려움은 비할 바 없다고 자신에게 다짐하곤 하였다. 그곳에는 일제에 의해 땅을 뺏기고 쫓겨온 이들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일제는 삼일독립만세운동,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의 참패로 독이 오를대로 올라 만주에서 동포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가 필요한 곳이었다.
그러하기에 손상열 목사는 자신의 임지뿐만이 아니라 만주 임강현과 압록강을 이웃집 드나들듯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갔다. 그러나 1921년 어느 날 오봉산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일본은 그를 독립군의 밀정이라며 끌고 나가 오수덕 숲속에서 총살하였다.
출생지와 출생연대를 확인할 수 없는 손상열은 본래 교사로서 수고하다가 1920년 영일군 광천교회에서 열린 제 15회 대화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는 당시 침례교 내에서 남다른 열정의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돌봄과 섬김이 특별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안수를 받은 그는 첫임지로 가장 추운 지방 중의 하나인 평북자성군으로 갔다.
사람이 살기에 매우 열악한 지역이지만 건너다 보이는 만주땅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쓰러져 가는 동포들을 생각하면 이곳의 추위와 어려움은 비할 바 없다고 자신에게 다짐하곤 하였다. 그곳에는 일제에 의해 땅을 뺏기고 쫓겨온 이들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일제는 삼일독립만세운동,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의 참패로 독이 오를대로 올라 만주에서 동포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가 필요한 곳이었다.
그러하기에 손상열 목사는 자신의 임지뿐만이 아니라 만주 임강현과 압록강을 이웃집 드나들듯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갔다. 그러나 1921년 어느 날 오봉산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일본은 그를 독립군의 밀정이라며 끌고 나가 오수덕 숲속에서 총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