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소개


배 영 초 ( 裵 永 楚 , 1908 ~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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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혼에 투철했던 농촌운동가 ”
생년월일 : 1908년 4월 14일
출생지 : 평남 용강군 대대면 매산리
순교일 : 1950년 10월
순교지 : 평남 평양형무소 소사
직분 : 전도사
교단 : 감리교


배영초는 1908년 평안남도 용강군 대대면 매산리에서 배영순의 2남으로 출생하였다. 집성사립학교를 거쳐 1925년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 과수, 야채 등을 개량했고 다수확농사를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

일제의 수탈정치에 모든 의욕을 빼앗긴 배영초는 사재를 정리하여 1940년 명덕중학원을 설립하고 농촌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엔 학생들이 늦게 학업에 뛰어 드는 시기였기에 중학생들이었지만 절반이상은 기혼자들이었고 나이가 선생보다 많은 학생도 많았다. 그들이 바로 한국농촌을 부강케 할 주춧돌이 되었다.

배영초는 명덕중학원 설립자인 동시에 덕동감리교회 장로로 봉직하며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농촌운동에 더욱 집중하고자 하였으나 공산화된 북녘에서 배영초가 일할 땅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자 주변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하지만 월남 후의 가족, 학교, 지역연고가 배영초를 붙잡았기에 그의 상황은 여의치가 않았다. 배영초는 지역 속에 붙잡혀 젊은이들에게 공산주의 허구성을 가르쳤다.

배영초의 이러한 활동은 팬인 척 끼어든 밀정으로부터 내무서에 속속히 밀고가 되었고 1946년 5월 사복정보 요원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 신체가 엉망이 될 정도로 얻어맞았다. 그 후 배영초는 진남포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다.

배영초는 스승을 판 제자들에게 서러움을 느꼈고 인간의 이율적배신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평소에 존경하는 이경재목사를 찾아가 “어차피 공산당으로부터 핍박받을 거, 복음을 증거하며 맞서 싸우겠습니다.”라고 하자 이경재목사는 강서지방 문동교회의 강단을 맡기어주었다. 배전도사는 그곳을 하나님의 말씀의 도장으로 삼았고 그곳에서 공산주의를 비판하곤 하였다.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나자 공산당은 반동으로 찍힌 북녘의 지도자들을 속속 구속시켰고 배영초전도사도 구속, 수감되었다. 배전도사는 강서보안서에 수감되었다가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 수형을 살다가 그해 10월 공산당이 패주하면서 평양형무소에 불을 질러 평양형무소 내에 사람들이 소사 당했고 배영초도 불길에 타 43세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