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소개


이 종 근 ( 李 鍾 根 , 1891 ~ 1945 )

“ 침례교 선봉에서 박해를 감수한 순교자 ”
생년월일 : 1891년
출생지 : 함경북도 회령
순교일 : 1945년
순교지 :
직분 : 목사
교단 : 침례교


이종근목사는 1891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17세때 입교한 이종근은 전도인을 거쳐 1922년 경흥대화회(제 17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신사참배로 교회가 가장 큰 수난기간인 1940년에 제 5대 감목으로 취임하였다.

한편 1941년 원산 총부에 우태호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미국의 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를 했다며 침례교단에서 교역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목이었던 이종근 목사를 비롯한 교단측 교역자들이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허락할 수 없어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교단에서 사용하는 신약성경과 복음찬미가(찬송가) 한 권씩을 가지고 서울로 가서 총독부에 신약성경과 복음찬미를 불온문서로 신고하였다. 일본 경찰은 교단을 해체할 기회로 생각하고 경찰을 보내 총부에 보관하고 있던 성경 6,500부와 복음찬미가 등 문서 일체를 압수했다. 또한 복음찬미 가사에 써 있는 예수님 보혈과 강림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러한 친일파의 고발로 인해 침례교단이 받은 박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정도였다. 결국 1942년 6월 10일 원산의 일본 헌병대는 총부를 재수색하는 동시에 이종근 감목을 구속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억압과 심문을 감행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1944년 5월 10일 동아기독교 해체령이 함흥재판소 법정으로부터 내려졌다. 전국의 교회에서 일본 경찰의 핍박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집회 금지는 물론 교회를 말살시키기 위해 교회 건물을 팔아 전쟁기금으로 사용하려 하였다. 전국 지방 교회마다 목자를 잃고 예배당을 빼앗긴 교우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그러나 신앙심이 불타는 성도들이 교인들의 집에 모여 주일에 예배를 드렸으며 여전히 순회전도자들은 전국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옥중순교자를 내기도한 날조된 원산사건은 일제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집회금지는 물론 교회당건물과 기물은 방매되어 일제의 국방헌금으로 헌납당하는 등 처절한 수난을 겪을 때 옥중의 감목 이종근 목사의 가슴은 찢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종근목사는 옥에 갇혀 있을 때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동료들을 염려해 이들이 속히 출감하도록 힘썼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문을 모두 받으면서도 동료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동료 목회자들을 감동시켰다. 

결국 교단해체로 2년 9개월만에 출옥한 그는 간도로 옮겼다. 그곳 지방공산당원은 습격하여 그를 붙들어다 배교를 강요하였다. 저들은 그를 사다리에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질을 해댔다. 매에 시달려 정신을 잃어버리자 죽은 줄 알고 떠나 버렸다. 하나님의 지켜주심으로 죽음의 고난에서 살아났다. 다시 종성으로 돌아와 가정에서 치료받는 중에 해방을 맞았다.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해방을 맞은 그는 남북이 분단된 채 신속하게 분열되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피폐된 몸으로 북한에서 교회 재건의 뜻을 이루지 못한채 그는 북한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가 없있다.

이종근 목사는 신앙의 의지로 핍박의 거센 풍랑에서 키를 움켜쥐고 본 교단을 이끌어 오는 데 사력을 다했다. 결국 자신은 물론 침례교단의 여러 지도자들이 옥고를 치러야만 했고 그는 한국 교회사에 찬란한 순교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