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소개


박 병 욱 ( 1928 ~ 1950 )

제108회 총회 제3호 순교자 박병욱 전도사


1. 순종의 첫 열매, 십자가의 길을 걷다

박병욱 전도사는 아버지 박상래 장로와 어머니 정호득 권사의 1여 6남 중 장남으로 하나님을 믿는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의 성품은 이삭과 같이 하나님과 부모님에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박병욱 전도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신앙적인 지도를 받으며 자랐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아들에게 철저히 교육하였고, 이는 박병욱 전도사가 하나님께 드려진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이삭처럼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했다.

이러한 가정적인 배경 속에서 박병욱 전도사는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자 했고, 그 서원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로 한다. 그는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마침내 조선신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신학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그의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으며, 신학교에서는 복음의 진리를 깊이 배우고 나누는 일에 헌신했다. 그의 신앙적 여정은 그의 부모님과 선배들의 신앙의 뿌리 위에 세워졌으며, 그 삶은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본보기가 되었다.

 

2. 박병욱 전도사의 신앙행적

박병욱 전도사는 할아버지 박준오 장로(1921년 장립)의 지극한 사랑과 부모님의 신앙지도를 철저하게 받고 자랐다. 그의 가정은 신앙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가정이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그는 이러한 신앙적 유산을 이어받아 성장했다. 그의 신앙의 뿌리는 바로 부모님과 할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이들의 신앙은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박병욱 전도사는 이리 기독 학생 노방 전도대를 조직하여 교회 밖에서도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리 지역에서 30여 명의 대원을 이끌며, 그들은 단순히 노방 전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헌신했다. 그가 조직한 전도대는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장이 되었고, 그의 지도력 아래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했다.

또한, 청년 시절 박병욱 전도사는 교회 청년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신앙을 더욱 깊이 실천하였다. 방학을 이용하여 마을에서 기독 문화 계몽 활동을 펼쳤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문화와 복음을 지역 사회에 접목하려는 노력에 헌신했다. 특히 그는 가극공연을 기획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기독교의 메시지를 예술적인 형태로 전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활동은 단순한 문화 활동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 내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을 전하며,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많은 청년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을 실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3. 순교 당시 주변 상황

박병욱 전도사는 목회자의 소명을 받아 서울 조선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던 중,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산에 숨어 낮에는 피하고 밤에만 이동하는 은신 생활을 시작했다. 약 10여 일에 걸쳐 그는 고향인 판문마을에 도착하였다. 당시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생활했다. 매일 아침과 새벽, 그는 모시 적삼에 몸뻬 바지를 입고 만경강 하천부지에 있는 콩밭에 가서 일하며 은신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발견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생활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하나님께 드린 사명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그의 은신 생활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판문마을에 공산당원들이 들어오면서 박병욱 전도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학교에 다니던 박상래 장로의 아들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마을에 있던 동네 청년이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고 이를 공산당원들에게 알리게 된다. 당시 대장촌 지역은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고 있었으며, 1950년 7월 23일부터 9월 27일까지 약 두 달 동안 북한군의 통제하에 있었다.

공산당원들은 박병욱 전도사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집을 수색했다. 그들은 기독교 서적과 함께 박병욱 전도사와 함께 전도 활동을 했던 전도 대원들의 명단을 압수했다. 이러한 증거들은 그가 반동분자(기독교인)임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되었고, 그를 죽이기로 한 공산당원들은 그를 체포하여 끌고 갔다. 그의 목숨은 위태로웠지만, 그 당시의 박병욱 전도사는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갔다.

박병욱 전도사는 당시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후에 그가 겪은 순교적인 고난은 많은 이들에게 신앙의 강한 증거가 되었다. 그가 체포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그의 신앙 여정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사건은 박병욱 전도사와 그의 신앙이 어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4. 박병욱 전도사 순교 당시 모습

아버지 박상래 장로(1954년 장립)는 끌려가는 아들을 계속 따라갔으며 옆에 있던 관계인들이 박상래 장로를 공산군 보위부에서 심문하여 지금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풀어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끝내 거절하였고, 10여 일이 지난 후 유엔군이 온다는 말이 돌자 공산당원들이 총살하고 도망가 버렸다. 순교 당시 현 전북기계공고 뒷산인 소라산 (야산 높이 15~20m)에서 14~15명을 세우고 옆에다 깊이 구덩이를 파놓고 총살했다. 이때 박병욱 전도사와 송현상(추후 대장교회 시무) 목사의 장인(남전교회 박병호 : 당시 익산군 오산면장)도 함께 순교를 당하셨다고, 송현상 목사와 박정덕 사모는 증언하고 있다.

순교 당시 소라산 주변에서 살던 사람들이 구경을 와서 들었는데 공산당원들이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물었을 때 사선에서 박병욱 전도사는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상에서 피를 쏟으시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 승천하신 내 주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주님 가신 그 길을 믿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어야 영생합니다.”라고 오히려 그들을 전도하였으며, 박병욱 전도사와 묶인 일행을 향해 총탄이 발사되고 “주여! 우리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박병욱 전도사의 묘지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박상래 장로의 넷째아들인 박병희 안수 집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순교 후 박상래 장로께서 현장에 가서 시신을 가져다가 인근 산에 가묘장 시켰는데 나중에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 못하였고, 묘지 소실 건은 당시 전주교도소를 시내 중심에서 시 외곽으로 이전(현 교도소 위치) 시켰는데 그곳에 선산이 있는 관계로 새로운 선산을 마련하여 아버지인 박상래 장로께서 네 분의 형 산소를 새로운 선산으로 이장하고자 파묘하고 확인했는데 박병욱 전도사의 묘가 아니었던 고로 묘를 분실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리 공업단지가 생기면서 무연고자 묘라 하여, 모두 공업단지로 정비해서 묘지를 소실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당시 지역의 변화와 전쟁 속에서 일어난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여준다.

 

4. 순교자의 피 흘리심을 바라보며! 우리의 각오와 다짐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고난의 역사이며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비극이었다. 대장교회 박병욱 전도사에게도 비켜 갈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이었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총칼 앞에 흘린 순교의 피는 우리의 가슴을 움켜쥐며 비통함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 박상래 장로는 눈물도 흘릴 수 없었고, 남겨진 후손인 갓 태어난 어린 딸의 울음소리는 마치 주님께 드리는 울부짖음과 같았다.

이처럼 한국 역사의 고비마다 대장교회에서는 순교의 피가 흘린 믿음의 선배들이 신앙을 어떻게 지켜갔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지를 믿음으로 입증하며 후손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 주었다.

박병욱 전도사의 순교는 단지 한 개인의 희생을 넘어, 한국 교회가 지켜온 복음의 뿌리 깊은 역사이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거룩한 헌신의 증거이다. 그의 피는 땅에 떨어져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심령 속에 믿음의 씨앗으로 뿌려졌다. 이에 우리는 그 믿음을 이어가는 후진들로서 그 뜨거운 신앙의 열정과 믿음을 기리고 본받아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피 뿌려 적셔진 주님 걸어가신 그 길이 곧 영광의 길이며, 저 천성을 향하는 길임을 우리의 심령에 깊이 새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