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춘 석 ( 李 春 錫 , 1919 ~ 1950 )

“ 요셉과 같이 성실했던 순교자”
생년월일 : 1919년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
순교일 : 1950년
순교지 : 충청남도 서천
직분 : 집사
교단 : 장로교


진사인 이중현의 막내로 태어난 춘석은 3살때 마을훈장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길산으로 이사한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고학당에서 공부하고 12살때 어머니와 함께 예수를 영접하였다. 그의 충성은 18살때 길산교회 예배인도자, 집사가 되었고 23살때 전북노회 성경학교를 졸업하여 석촌교회를 인도하면서 농사를 지었다.

두황리 야학당에서 학생들에게 나라사랑의 길을 깨우치고 애국적인 노래들을 가르쳐 왜경들의 감시를 받던중 신사참배거부로 구속되어 받는 고문은 그에게 견디기 어려운것이었다. 한창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던 때에 왜경은 26살난 그를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당시 징용당한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때문에 수없이 죽어갔다.

2차 세계대전 말기 패색이 짙은 일제는 지하기지를 파고 있었는데 그를 암수현 지하동굴에 투입하였다. 견딜수 없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한 그는 총감독 마쓰다의 호의로 식량관리자로 있으면서 해방을 맞았다. 모진 환경에서도 마쓰다의 배려로 징용신자들의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때 모아진 헌금으로 환자들을 치료하여 함께 귀국하였고 남은 돈을 이춘석이 출석하는 석촌교회로 헌금하도록 모두들 쾌히 허락하였다.

귀국한 그는 계속 산천, 남전,옥산교회를 개척하였고 신송기도실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서천군청 직원으로 일하면서 그의 발걸음은 지칠줄 모르는 전도의 불로 이어졌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두신 뜻이 있음을 기도로 찾으며 복음을 전하고 있을때 6,25전쟁이 터졌다. 그무렵 서천읍교회강단을 맡고 있는 그를 미워하고 있던 공산당원은 인천상륙소식을 듣고 후퇴하기전에 그를 체포,서천등기소에 감금하였다가 방화하고서 총을쏘아댔다. 저들을 위해, 동족의 죄와 화해를 위해 기도하면서 아쉬움없는 짧은 생애를 하나님께 드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