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결교 최초여성순교자 ” 생년월일 : 1891년 2월 출생지 : 전남 신안군 임태면 수곡리 순교일 : 1950년 10월 5일 순교지 : 전남 신안 증도 증동리교회 근처 바닷가 모래사장 직분 : 전도사 교단 : 성결교 |
문준경은 1891년 2월 2일 전라남도 신안군 임태면 수곡리에서 문재경의 3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기가 남보다 뛰어났지만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문준경은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지 못했다.
문준경은 17세가 되는 1908년 3월 18일 정근택에게 시집을 갔다. 문준경의 남편은 소실을 얻어 남편 있는 생과부로 살았다. 그런 문준경에게 시아버지는 한글을 가르쳐주었고 1928년에 시부가 돌아가시자 문준경은 큰오빠가 있는 목포로 가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전도자를 만나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해 함께 지내며 울음을 쏟아 놓았고 이때부터 목포 북교동교회에 발을 내딛었다.
북교동교회 이성봉목사가 시무했고 문준경은 입교하고 6개월 만에 학습세례를 받고 1년 만에 집사가 되었다. 친정에 가서 부모에게 예수를 전하다가 악신을 접하고 친정을 서양귀신에 망하게 하려고 왔느냐면서 아버지로부터 배를 걷어차이고 수체구멍에 오물을 뒤집어 씌워졌다. 이같이 친정부모에게 박대를 당하고 쫓겨나오면서도 슬프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그녀는 세상의 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31년 상경하여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고 25회로 졸업할 때까지 6년을 도서지방 순회전도사가 되어 1933년 임자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방축리교회, 우전리교회, 사옥교회 등을 개척했다.
재직 중 6교회를 개척한 문전도사는 졸업하고 다도해 773개 섬 중에 122개 섬을 떠돌며 목회를 했다. 문전도사의 전도특징은 섬마을 사람의 생활 속에 들어가 함께 우는 것이었다. 전염병으로 죽으면 염을 해주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가 발생하면 즉시 찾아가 위로해주고 육지를 오고가며 섬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짐꾼이 되어 주었고 주기를 좋아하는 그는 신던 버선이라도 벗어주었다.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성결교단이 강제 해산됨과 동시에 문전도사가 개척한 증도교회에까지 여파가 미쳤다. 그녀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며 목포경찰서로 불러내 고문을 일삼았다. 이 때마다 문전도사는 찬송가 336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지켰네”를 부르며 에스더서 4장16절 “죽으면 죽으리라”를 수없이 되풀이 했다.아무리 회유와 협박이 이어져도 굴욕적인 신사참배는 허락되지 않았다.
1950년 6.25가 터지자 같은 섬에 목회하던 양도천전도사 백정희전도사를 다른 섬으로 피난을 시키려 했는데 배를 타려는 순간 공산 폭도들이 몰려와 두 전도사를 두들겨 패어 파죽음을 시켜 놓고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한 문준경, 양도천, 이봉서 세 전도사는 목포 분주소로 옮겼다. 그들 일행이 떠나는 날 밤 중동리 무수한 양민이 공산폭도들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1950년 9월 28일 배가 목포에 도착하니 인공기 대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본 내무서원들은 도망갔다. 문전도사는 은신하고 있는 이성봉목사를 찾아갔다. 이목사가 난리 후에 중동리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하였으나 문전도사는 ‘저 때문에 무고한 성도가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며 ‘더구나 백전도사가 대신 붙잡혀 옥고를 치를 텐데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중동리로 돌아갔다.
1950년 10월 5일 제 발로 내무서를 찾아온 문전도사는 새끼줄에 묶인 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끌려온 후 죽창으로 찔리고 발길로 차이며 총대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맞았다. 그 와중에도 문 전도사는 “나는 죽이더라도 백정희전도사와 성도들은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공산군은 “너는 반동의 씨암탉 같은 존재이기에 처형한다.”며 문전도사를 창으로 잔인하게 온몸을 찔렀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목에도 총구를 대고 총살하여 당시 59세로 순교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중도면 중동리에 있는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문준경전도사가 개척한 대초리교회
문준경전도사의 묘비
문준경전도사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 남도의 백합화 >
기성 교육부, 문 전도사 순교지 신안 증도 등에서 '순교영성캠프'열어
신안=김철영
'순교 영성'과 '내가 경험한 문준경 전도사', '한국 교회 부흥과 순교 역사'등에 대한 강의가 이뤄지고 있다.
문준경 전도사가 최초로 개척한 임자진리교회
임자진리교회 내부
임자진리교회 마당에 세워진 순교기념비
임자진리교회 마당에 세워진 순교기념비에 적힌 순교자명단
지도와 임자를 운행하는 여객선, 문 전도사는 풍선(돛단배)을 타고 다녔다.
문준경전도사가 개척한 중동리교회
문준경은 1891년 2월 2일 전라남도 신안군 임태면 수곡리에서 문재경의 3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기가 남보다 뛰어났지만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문준경은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지 못했다.
문준경은 17세가 되는 1908년 3월 18일 정근택에게 시집을 갔다. 문준경의 남편은 소실을 얻어 남편 있는 생과부로 살았다. 그런 문준경에게 시아버지는 한글을 가르쳐주었고 1928년에 시부가 돌아가시자 문준경은 큰오빠가 있는 목포로 가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전도자를 만나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해 함께 지내며 울음을 쏟아 놓았고 이때부터 목포 북교동교회에 발을 내딛었다.
북교동교회 이성봉목사가 시무했고 문준경은 입교하고 6개월 만에 학습세례를 받고 1년 만에 집사가 되었다. 친정에 가서 부모에게 예수를 전하다가 악신을 접하고 친정을 서양귀신에 망하게 하려고 왔느냐면서 아버지로부터 배를 걷어차이고 수체구멍에 오물을 뒤집어 씌워졌다. 이같이 친정부모에게 박대를 당하고 쫓겨나오면서도 슬프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그녀는 세상의 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31년 상경하여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고 25회로 졸업할 때까지 6년을 도서지방 순회전도사가 되어 1933년 임자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방축리교회, 우전리교회, 사옥교회 등을 개척했다.
재직 중 6교회를 개척한 문전도사는 졸업하고 다도해 773개 섬 중에 122개 섬을 떠돌며 목회를 했다. 문전도사의 전도특징은 섬마을 사람의 생활 속에 들어가 함께 우는 것이었다. 전염병으로 죽으면 염을 해주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가 발생하면 즉시 찾아가 위로해주고 육지를 오고가며 섬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짐꾼이 되어 주었고 주기를 좋아하는 그는 신던 버선이라도 벗어주었다.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성결교단이 강제 해산됨과 동시에 문전도사가 개척한 증도교회에까지 여파가 미쳤다. 그녀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며 목포경찰서로 불러내 고문을 일삼았다. 이 때마다 문전도사는 찬송가 336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지켰네”를 부르며 에스더서 4장16절 “죽으면 죽으리라”를 수없이 되풀이 했다.아무리 회유와 협박이 이어져도 굴욕적인 신사참배는 허락되지 않았다.
1950년 6.25가 터지자 같은 섬에 목회하던 양도천전도사 백정희전도사를 다른 섬으로 피난을 시키려 했는데 배를 타려는 순간 공산 폭도들이 몰려와 두 전도사를 두들겨 패어 파죽음을 시켜 놓고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한 문준경, 양도천, 이봉서 세 전도사는 목포 분주소로 옮겼다. 그들 일행이 떠나는 날 밤 중동리 무수한 양민이 공산폭도들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1950년 9월 28일 배가 목포에 도착하니 인공기 대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본 내무서원들은 도망갔다. 문전도사는 은신하고 있는 이성봉목사를 찾아갔다. 이목사가 난리 후에 중동리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하였으나 문전도사는 ‘저 때문에 무고한 성도가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며 ‘더구나 백전도사가 대신 붙잡혀 옥고를 치를 텐데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중동리로 돌아갔다.
1950년 10월 5일 제 발로 내무서를 찾아온 문전도사는 새끼줄에 묶인 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끌려온 후 죽창으로 찔리고 발길로 차이며 총대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맞았다. 그 와중에도 문 전도사는 “나는 죽이더라도 백정희전도사와 성도들은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공산군은 “너는 반동의 씨암탉 같은 존재이기에 처형한다.”며 문전도사를 창으로 잔인하게 온몸을 찔렀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목에도 총구를 대고 총살하여 당시 59세로 순교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중도면 중동리에 있는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문준경전도사가 개척한 대초리교회
문준경전도사의 묘비
문준경전도사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 남도의 백합화 >
기성 교육부, 문 전도사 순교지 신안 증도 등에서 '순교영성캠프'열어
신안=김철영
'순교 영성'과 '내가 경험한 문준경 전도사', '한국 교회 부흥과 순교 역사'등에 대한 강의가 이뤄지고 있다.
문준경 전도사가 최초로 개척한 임자진리교회
임자진리교회 내부
임자진리교회 마당에 세워진 순교기념비
임자진리교회 마당에 세워진 순교기념비에 적힌 순교자명단
지도와 임자를 운행하는 여객선, 문 전도사는 풍선(돛단배)을 타고 다녔다.
문준경전도사가 개척한 중동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