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극 ( 朴 在 極 , 1893 ~ 1951 )

“ 부모를 여윈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다 ”
생년월일 : 1893년 3월 7일(양)
출생지 :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용운리 12번지
순교일 : 1951년 7월
순교지 :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경찰서
직분 : 장로
교단 : 장로교


박재극은 1893년 3월 7일에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용운리 박영칠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 있던 입석교회를 다녔고, 27세에 장로직분을 받게 되었다. 박재극장로는 철저한 신앙의 가정교육자로 저녁이면 어린아이들까지도 가정예배를 드려야만 잠들 수 있게 하였다.

박장로는 부모를 일찍 여윈 가난한 집의 아이들,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시집까지 보낸 사람만 17명 정도였다. 박장로는 사랑을 베푸는 자였다. 부농임에도 불구하고 박장로의 생일날 생일상을 차린다거나 4남매의 생일을 차리도록 한 적이 없었다. 생일 차릴 비용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기 위한 것이었다.

박장로는 입석교회의 모든 경비와 입석교회 목사의 생활비일체, 땔감이나 양식 등도 책임지는 등 교회의 살림살이를 담당해서 일하였다.

그런 박장로를 공산당들은 못된 시선으로만 보았다. 반동이라는 것이었다. 공산당들은 예수님을 믿지 말고 자기들에게 충성복종하길 바랬지만 박장로는 굽히지 않았다.

대성중학교를 졸업하였는데 당시 사감선생이었던 이승만대통령이 붓글씨를 잘 썼던 박재극을 기억하여 정부 수립 후에 그를 계속 찾았다. 1.4후퇴 전에 궁원장(지금 군수)에도 추대되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이후 몸을 피하였다.

1950년 6.25발발 이후 1951년 1.4후퇴 어간에 용봉지역의 사돈댁(며느리의 친정)에 숨었던 박재극장로는 체포되어 안주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던 중 고문에 못 이겨 59세에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