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소개


강 혁 조 ( 姜 赫 祖 , 1896 ~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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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생활을 하며 예배인도를 한 순교자”
생년월일 : 1896년 1월 18일
출생지 :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봉천동
순교일 : 1950년 10월 26일
순교지 : 평안남도 강동군 삼등면 
직분 : 장로
교단 : 장로교


강혁조는 1896년 1월 18일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봉천동 521번지에서 부친 강시협(姜時拹)과 모친 최토정(崔土貞) 사이 3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15년 미국선교사로부터 조모인 최씨가 주님을 영접하여 우상숭배물을 모두 불태우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강혁조는 창성군 봉천동 후평교회에서 27세에 장로가 되어 모든 이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었다.

1939년, 방현 장로교회 시무장로가 되어 수석장로로 일제치하에서 많은 고초를 당하였다. 이후 1948년, 공산치하의 이주 계획에 따라 평안북도 구성군 방현면에서 평안남도 강동군 삼등면 송가리 덕산탄광으로 이주되어 탄광촌생활을 하며 송가리교회 교인들을 모아 주일예배를 인도하였다. 당시 송가리교회는 교회건물만 있었으며 교인은 10여명뿐 교역자를 대신하여 교인들을 찾아 심방하고 주일이면 강단에서 예배인도를 하였다.

1950년 10월 25일 아침, 혼자만 가는 뒷산기도처소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매일 암송하는 성경 히브리서 11장,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3장을 암송하며 마당청소를 하고 있을 때 강혁조장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정치보위부원 두 사람에게 강제로 끌려가 투옥된 후 다음날 1950년 10월 26일 저녁 보위부 뒷산 중턱에서 총살되어 55세에 순교하였다.

1950년 10월 30일 한국군과 UN군이 평양을 수복한 후 시신을 찾기 위해 수소문 하던 중 보위부 근처에서 노인 한분을 만나 이야기하던 중 보위부 뒷산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말을 듣고 뒷산 여러 곳을 살피던 중 방공호를 발견하고 당시 치안대장인 전영택(현재 부산 대연제일교회 장로)와 함께 시신 발굴 작업을 하여 확인하고, 흙더미 속에서 풀잎 하나를 오른손에 꼭 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평온한 모습으로 천국에 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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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왼쪽 첫 번째 강혁조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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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삼산노회 창립 시 강혁조장로가 회계에 선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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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문